질레트 선교사는 YMCA회관 건립을 위해 기금을 모금하고 종로회관을 건축했다. 그리고 1908년 12월 3일에 개관하여 종로 YMCA시대를 열었다.
강당과 체육실 등 3층 벽돌 양옥 회관을 준공했다. 이 회관은 실내체육 발전에 획기적인 영향을 주었다.
체육실의 역할에 대하여 반하트 선교사는 1919년 9월 보고에서 “추운 겨울에도 쉼 없이 운동을 했다. 몇 해 전 만해도 신사들과 그 자제들은 운동경기를 천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일변하여 모든 신사들이 운동을 즐기게 되었는데, 이것은 틀림없이 YMCA의 공헌이다.
사실상 한국에서 연중 무휴로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은 YMCA 밖에 없다”고 했다.
질레트 선교사는 배재학당의
기독학생회를 학생 YMCA로 개편하엿다.
이상재 윤치호 이승만 등 민족 운동가를 YMCA에 영입하였으며, 자문위원회도 구성했다.
조선을 끔찍이 사랑했던 그는 이름도 길례태(吉禮泰)로 바꾸고 사람들 앞에서 “한국에 뼈를 묻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