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로 인하여
동학란이 일어나고 당파싸움이 벌어지고 친일파,
친러파로 갈리어 나라가 어지러울 때 이곳 동해바다 영일만 대송면 넓은 들,
그리 크지 않는 괴동 마을에 살던 박군현氏는 청운의 뜻을 품고 바다 건너 일본에 가서 머무는 동안
그리스도 복음을 접하며 일본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고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는가 관찰한 결과 일본이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그 문화가 정착 된데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복음의 씨앗을 고국으로 가져와 자기 집 사랑채를
예배당으로 예배 드리기 시작한 것이 1901년 대송교회 전신인
괴동교회의 출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