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브란덴은 아버지와 그 아들의 소득을 비교하여 소득 분포와 수직 이동성의 상관관계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소득 불평등이 심할수록 수직 이동성이 악화되어 소득에 따른 계층 고착화가 심화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기회의 나라로 알려진 미국의 사회 계층 이동성이 가장 낮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에서 저소득층의 자녀로 태어나면, 성인이 되어서도 저소득층에 속할 확률이 다른 나라보다 높다는 것
이다. 미국은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나라로, 소위‘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실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낮은 곳이 바로 미국이고 반대로 그러한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가 노르웨이였다. 소득의 양극화는 교육의 양극화와 그에 따른 기회의 양극화로 연결되어 계층의 수직 이동을 어렵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과거 폐쇄적인 신분제 사회가 안고 있었던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소수에게만 주어져 인력이 낭비되고, 계층 간 갈등이 증가하여 결국에는 사회 통합을 저해할 수도 있다.
한국인 최초의 양의사인 박서양은
당시의 백정이라는 천한 신분으로
제중원 의학교를 졸업하여 의사가 된 인물이다.
최하층 신분이었던 박서양이 의사가 된 것은 제중원 4대 원장인 에비슨과의 운명적 인연 덕분이었다. 에비슨은 처음 박서양의 제중원 의학교 입학을 허락하지 않은 대신 그를 병원으로 불러 청소, 침대 정리 등 온갖 궂은일을시켰다.
뒷날 밝혀진 일이지만 에비슨은 박서양의 사람됨을 알기 위해 일부러 그를 시험한 것이었다. 결국 박서양은 1908년 졸업 시험을 통과해 한국 최초의 의사 면허를 받았다.
그러나 1895년 갑오개혁으로 양민과 천민의 형식적인 구분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분의 잔상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백정 출신인 박서양의 진료를 거부하였다.
하지만 박서양은 좌절하지 않고, 마침내 제중원 의학교의 교수가 되어 화학, 해부학 등을 가르치며 외과 환자를 진료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의사로서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간도로 이주하여 구세 병원과 숭신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간도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 국민회에서 독립군을 도우는 군의(軍醫)로 임명되어 독립군의 치료를 맡다가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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