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0년(의종 24) 이의방, 정중부 등 무신들이 군인들의 지지를 받아 문신
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을 세웠다.
무신들이 집권 후에 보인 모습은
문벌 귀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신들은 중방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면서
관직을 독점하고,재산을 축적하였다.
무신 정권 초기에는 권력 다툼으로
집권자가 자주 교체되었다.
최충헌은 교정도감을 만들어 권력 기반으로 삼고 도방을 두어 신변 경호와 함께 반대 세력을 감시 하였다.
그는‘봉사 10조’와 같은 개혁안을 제시하기도 하였지만, 권력 강화에 힘을 쏟았고 농민 봉기를 탄압하였다.
교정도감은 최충헌이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해 새롭게 설치한 기구이다.
이후 국정을 총괄하는 기구로 확대되어
무신 정권 내내 존속하였다.
최우는 정방을 설치해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인사 기준으로 학문적인 소양보다
행정 실무 능력을 더 중요시하였다.
이때 향리들이 활발하게 중앙 관리로 진출할 수 있었다. 한편, 삼별초를 설치하여 도방과 함께 정권 유지의 군사적 기반으로 삼았다.
강화를 맺은 최우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끝까지 항쟁할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정부군은 몽골군과의 싸움에 소극적이었고, 오히려 일반 백성이 주축이
되어 갖은 어려움 속에서 끝까지 항쟁을 계속하였다.
30여 년 동안 계속된 무신 권력 다툼---
최충헌이 집권하면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