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지맥인 은왕봉이 용꼬리가 되고 한 마리의 거대한 용처럼 음수형태(飮水形態)로 달리는 동산구릉중의 중동산 비탈에 자리잡은 마을로 용(龍)품에 안긴 것 같은 형국이다.
이와 같은 아늑한 동리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리 어구에는 노송이 일렬로 서 있는데 동명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대동산 기슭은 잘 개간되어 과수원으로 이용하여 마을의 경제면을 좌우하는 소득원이다. 동산 구릉의 땅기운을 일인들이 도로를 개통할 때 용머리 부분에 길을 내어 용맥을 끊어버렸다.
도선(道銑)법사가 예언하기를 만고불파의 명지라고 했는데 일인이 용머리를 끊고 다시는 공설운동장 공사로 용신을 만신창이로 해놓고 있다. 범곡리는 마역리(磨亦里)와 유목정(柳木亭)일부가 합동된 마을이다.
범실(凡谷, 虎谷)
옛날에 송림이 우거져 범이 살던 골이라고 범실이라는 설과
조선시대에 청도 김 공이 범을 타고 경주까지 무난히 왕래를 하다가 범이 죽자 묻어준 무덤이(지금도 남아 있다)있다고 호곡(범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인데 후자가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호환(虎患)을 두려워하던 시대라서 마을 이름에 호(虎)자는 아무래도 꺼림직하여 범곡(凡谷)으로 표기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가실(可室, 麻谷, 磨谷, 麻亦)
각종지리지에는 마역리로 나타난다. 지형상으로 보아 논보다 밭이 옛날에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삼(麻)농사를 많이 하는 골짜기라고 마곡(麻谷-마실)이라고 했으나 10여리에 떨어진 곳에도 마곡리(각남면 화리)가 있어서 동명으로 할 수가 없어서 역시 삼골이란 뜻의 마역(麻亦)리로 표기한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해 본다. 그러나, 어찌하여 지리지에 마(磨)자로 기록이 되었나 하는 점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은왕봉(隱王峰)
이서국이 정벌 당할 때 왕족들이 은신 피난한데서 유래된 산 이름이다. 현재도 당시 동굴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왕족들은 산을 넘어 밀양에서 낙동강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구전이 있다.
마을 뒷산인 상동(上東)산을 안태봉(安胎峰)이라 하는데, 이는 이서국 왕자의 태를 묻은 데서 유래된 이름이고 이 부근에서는 청동기시대의 토기 파편이 산재하고 있다.
요도(蓼島)
현재는 전답(田畓)으로 되어 있으나 조선시대 죄인이 유배되어 이 곳에 안치되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 후 이 곳을 방치하여 두어 쑥대가 무성하여 요도(蓼島)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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