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간도에 간너가 뤄쯔거우의 무관학교에서 4년간 군사교육을 받고 귀국한 나석주는 황해도 겸이포에서 항일공작원으로 일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모금하여 보내고 대한독립단원들과 황해도 일대에서 친일파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일본 경찰의 감시가 강화되자 1920년 9월에 상하이로 망명했고 1926년 톈진에서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입단했다.
1926년 6월에 톈진에서 유림대표 김창숙과 모의하여 동양척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을 파괴할 계획을 세운 후 국내로 잠입했다.
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되면서 일본경찰의 추격을 받았는데 일경과 치열한 총격전을 벌이다가 총알이 떨어지자 장렬하게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