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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비석 백두산 정계비의 비문에는“오라 지방의 총관목극등이 황제의 뜻을 받들고 변방의 경계를 조사한 결과 서쪽은 압록강이고, 동쪽은 토문강이며 분수령 상에비를 세워 명기한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비석이 세워질 당시에는 이 내용이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세월이 지난 뒤 20세기 초에 토문강이 어느 강을 가리키는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게 되면서 간도 지방에 대한 영토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 을사조약 이후 일본은 임의로 청에게 간도를 넘겨 주고, 그 대가로 만주 지역철도 부설권을 넘겨받아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이용하려고 하였다.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당시 간도는 불모지에 가까웠고, 양국 모두 별로 욕심내지 않았다. 조선 정부는 압록강과 두만강만 확보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 정도도 실질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 더보기
고려시대 행정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한 지역을 주현이라고 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은 지역은 속현이라고 하였는데 지방관을 파견한 주현보다는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은 속현의 숫자가 훨씬더 많았다 고려는 현종때에 지방제도의 골격을 갖추었지만 완전한 중앙집권은 이루지를 못하였는데 지방의 모든곳에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하였다. 속현의 실질적인 통치는 지방의 호족이나 향리들이 맡으며서 지방세력의 힘이 매우 강하였다고 할수가 있다. 11세기경에는 주현이 46개였는데 비하여 속현의 숫자는 361개에 이를정도로 많았다 더보기
구룡포에 있는 마을 구룡포에 있는 마을로는 석병리와 삼정리, 구룡포리, 눌태리등이 있다. 석병리라는 지명은 암벽이 마치 병풍을 세워 놓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남쪽에는 길게 바다쪽으로 뻗은 송림을 배경으로 하여 폐교된 석병초등학교 터가 있다. 마을 남동쪽 바닷가에는 병풍모양을 하고, 끝이 뾰족 한 아흔아홉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하여 '아흔아홉골짜기'라고도 불리는 병풍바위가 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