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11월혁명으로 소비에트 연방이 등장하자, 민중의 힘에 대한 자각과 함께 아시아 민족주의자들로 하여금 민족혁명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세계체제의 성립으로 민족해방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것은 종래 부르주아 민족주의운동과는 달리, 러시아 혁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식민지·반식민지의 노동자와 농민 계급의 지도하에 민족혁명과 사회혁명을 동시에 지향한다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1919년 코민테른(제3 인터내셔널)의 결성으로 나타났으며, 세계혁명의 한 구성요소로서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이 부각되었다. 코민테른이 식민지 문제를 중시하자 많은 민족운동의 지도자들이 여기에 공명했다.
이에 따라 민족해방운동은 부르주아 민족주의운동과 프롤레타리아 민족주의운동으로 분화되었다.
민족해방의 문제는 제국주의 지배로부터의 해방뿐 아니라, 동시에 봉건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따라서 이러한 민족해방의 정치적·경제적 내용은 민족해방운동의 주체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아갔다.
오히려 민족독립의 이론적 근거로서의 민족자결주의는 제국주의에 의해 민족병합을 합리화하는 자치권사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따라서 전후 처리를 위해 개최된 베르사유 조약에서도 식민지·반식민지의 민족문제 해결에는 매우 소홀했다.
그러나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식민지·반식민지 지역의 민족지도자들에 의해 민족독립을 위한 하나의 이론적 기반으로도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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