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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지눌의철학

산골지기 2015. 11. 2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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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눌은 이 같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우라고 하였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참답게 사물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그리고 이 같은 참지혜로 사물을 볼 때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분별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조계종 종정이었던 성철 스님은 부처님 오신 날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를 발표한 적이 있다. 사실 이 법어는 중국 선승의 이야기를 되살린 것이기도 하다.

 

예전에 중국의 한 승려가 처음 불교에 귀의하기 전에 산이 보였고, 승려가 되어 세상 모든 것에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일 뿐이라는 가르침을 들으면서 산이 안 보였는데, 30년의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고 나니 다시 산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 일화에서 처음 보이던 산과 30년 뒤에 보이던 산은 같은 산일 뿐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떤 사물을 대하든지라는 존재의 입장을 버리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생겼다고 하자. 그 일은 민족 또는 우리 마을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때 내게 이로울 것인가 해로울 것인가를 따진다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은 자신을 버릴 때 비로소 가능하다. 지눌은 분별을 버리면 나와 남의 구별이 사라지게 되고, 그때 남을 위하는 일이 바로 자기를 위하는 일이 된다고 하였다.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버리고 보아야 사물의 참모습을 구분해 볼 수 있는 지혜가 나오는 것이다.

 

고려지눌의철학은 남종과북종을 하나로 합친 것이며, 그 위에 다시 교종을 합친 것이다. 지눌은 부처가 입으로 전한 것이이고 마음으로 전한 것이인데, 석가의 마음을 통한 가르침과 입을 통한 가르침이 다른 것이 아니므로 교종과 선종을 합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부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임을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경전은 배의 방향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조계종이 그 바탕은 선종이면서도 경전을 중시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지눌의 철학에서 온 것이다. 이러한 지눌의 철학은 의천과 마찬가지로 원효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지눌은 항상 원효를 높였으며

 

 자기주장의 중요한 대목마다 원효의 설명을 인용하곤 했다.

 

이처럼 원효의 합침의 철학은 지눌에게도 이어진다.

 

 

불교에서는 그러한 눈을 혜안(慧眼)이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승려들은 어려운 고비마다 무기를 들고 나왔다. 고려 때 거란과 싸운 일이나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운 일이 모두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