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정이었던 성철 스님은 부처님 오신 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 법어는 중국 선승의
이야기를 되살린 것이기도 하다.
예전에 중국의 한 승려가 처음 불교에 귀의하기 전에 산이 보였고, 승려가 되어 세상 모든 것에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일 뿐이라는 가르침을 들으면서 산이 안 보였는데, 30년의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고 나니 다시 산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 일화에서 처음 보이던 산과 30년 뒤에 보이던 산은 같은 산일 뿐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떤 사물을 대하든지 ‘나’라는 존재의 입장을 버리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생겼다고 하자. 그 일은 민족 또는 우리 마을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때 내게 이로울 것인가 해로울 것인가를 따진다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은 자신을 버릴 때 비로소 가능하다.
지눌은 분별을 버리면 나와 남의 구별이 사라지게 되고, 그때 남을 위하는 일이 바로 자기를 위하는 일이 된다고 하였다.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버리고 보아야 사물의 참모습을 구분해 볼 수 있는 지혜가 나오는 것이다.
고려지눌의철학은 남종과북종을 하나로 합친 것이며, 그 위에 다시 교종을 합친 것이다. 지눌은 부처가 입으로 전한 것이‘교’이고 마음으로 전한 것이 ‘선’인데, 석가의 마음을 통한 가르침과 입을 통한 가르침이 다른 것이 아니므로 교종과 선종을 합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부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임을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경전은 배의 방향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